연성을 합시다

여름이었다...

뿌끼 2020. 10. 20. 18:22

 이른 점심시간부터 매점 앞은 북적거렸다. 고등학생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급식 메뉴를 내놓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정하도 일찌감치 급식 먹기를 포기하고 매점 앞 벤치에 늘어지게 앉아 있었다.


 좁은 매점의 안쪽으로 시선을 두니 다른 사람보다 한뼘은 더 튀어나온 얼굴이 있었다. 여러 사람이 붙어있는 것이 불편한 여름인지라 머리 위로 달린 귀가 불만스럽게 파닥거렸다. 저 안이 덥긴 덥지. 정하가 저 틈바구니에 끼어있지 않고 바깥에서 미적지근한 바람을 쐴 수 있는 것은 저 사자 선배를 상대로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쳤기 때문이었다.


 ‘들어봐요. 고만고만한 키를 가진 내가 저기 들어가면 어떻겠어, 그냥 사람 구경만 하다가 나오는 거예요. 선배가 대신하면 다들 비켜줄걸?’


 …지금 생각하니 억지를 들어줘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마냥 억지도 아니었는지, 매점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강이 두 손 가득히 음식을 가지고 나왔다.


거봐요, 금방 샀지?”


 정하는 입꼬리를 올리며 능청을 떨어댔다. 자리를 벤치 가장자리로 옮기며 천강이 들고 있던 음식을 몇 개 덜어주었다. 빵 네 개, 음료 두 개. 둘이 나누어 먹으면 얼마 되지 않았다. 고작 이 정도로는 허기를 채울 수 없어서 아마 다 먹은 뒤에 다시 매점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었다.


 “그래도 다시 저기에 들어가라고 하지 마. 사람이 너무 많잖아.”

 “알았어요. 얼른 앉아, 배고프겠다.”


 또 시키려는 건 철회. 정하가 제 마음속에 세워두었던 계획을 지웠다. 어차피 매점보다는 조금 더 기다렸다가 하교 후에 떡볶이나 먹으러 가는 게 나았다. 이따가 같이 가자고 물어볼까. 빈약하기 짝이 없는 빵의 비닐을 뜯으며 생각했다.


 동급생이 아닌 천강과 어떻게 말을 트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처음 천강을 보게 된 것은 그가 아주 작아 보였을 때였다. 그러니까, 정하는 교실에서 멀뚱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천강은 운동장을 제 것인 양 누비고 있었다. 햇빛을 받아 희게 빛나는 머리카락이 정하의 눈에 들어오게 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몇 번을 그렇게 일방적으로 보다가, 교무실에서 우연히 마주쳤었다. 그 이후로는…… 역시 모르겠다. 자주 마주치다 보니 말이라도 텄나 보지. 어떻게 친해졌는지 기억나지 않는 친구가 대부분이었으니 이 생각도 금방 접었다. 안 그러면,


 “내 빵! 그새 다 먹는 게 어딨어!”


 체육특기생답게 천강이 벌써 세 번째 빵을 들고 야금야금 해치우고 있었다. 정하는 이제 고작 반쯤 먹고 있었다. 얼이 빠진 얼굴로 있다가 잔뜩 골이 나서는, 흙바닥을 슬리퍼로 힘껏 찼다. 흙먼지가 부옇게 일어났다가 금방 가라앉았다.


 “누가 밥 먹는데 다른 생각하래?”


 천강이 몹시도 즐겁다는 듯 웃었기에 입 안쪽으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살짝 드러났다가 모습을 감췄다. 이 선배, 사자였지. 편하게 대해주어 종종 잊곤 했던 사실이었다. 정하는 싸구려 맛이 나는 빵을 한 입 베어 물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래요, 많이 먹어. 나 아니면 누가 선배한테 양보해주겠어.”


 원체 먹는 양도 자신보다 많고, 몸을 잘 쓰기까지 했다. 붙박이처럼 책상에 앉아 있는 자신보다는 많이 먹어야 힘이 나겠지. 그새 마지막 빵을 다 먹고 음료수를 따는 천강에게 삐죽거리는 소리를 더 하지 못했다.


 대신 다른 생각이 났다. 벤치 중앙에 있는 빈 비닐을 대충 다른 곳으로 치워두고, 그 자리를 정하가 차지했다. 천강은 이게 또 뭘 하려나 싶은 눈빛이었다.


 “입 좀 벌려봐요.”


 다소, 아니 굉장히 뜬금없는 요구였다.


 “……?”

 “아까 웃을 때 보니까 송곳니가 엄청 뾰족하더라구. 가까이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궁금해요. 빵도 세 개나 먹었으면 보여줄 수 있잖아.”


 뜬금없는 것으로 부족해서 당돌함도 넘쳤다. 정하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 무척 당당한 태도여서 응당 해야 하는 일처럼 들릴 법도 했다.


 정하가 벤치 등받이에 팔을 턱 하니 걸치고 천강의 입 주변을 만져댔다. 이 주변에 송곳니가 있지 않았나. 얼굴까지 근육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볼이 말랑했다. 은근히 만지기 좋았다.


 결국 천강이 먼저 백기를 들어주었다. 마침 햇빛이 비추고 있어서 입을 벌리자 방금 보았던 송곳니가 선명히 드러났다.


 ‘저거에 찔리면 엄청 아프겠는데.’


 아예 정하가 두 손으로 천강의 얼굴을 감싸고 구경했다. 옆으로 돌리고, 살짝 위로 들게도 하고, 여러 각도에서 보면 나오는 결론은 하나였다. 저건 돌도 씹어먹겠다.


 “엄청 뾰족해. 키스라던가 할 수 있어요?”

 “확인해볼래?”

 “?”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기에, 정하는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몰랐다. 평소 신경 쓴 적이 없는 곳에 말랑하고 따뜻한 것이 닿아서 뒤늦게 알아차렸다. 키스를, 그것도 매점 앞에서 하고 있었다.